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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Ki Eun

Exhibition Statement

 일상은 끝없이 연결된 화면과 알림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정보의 홍수는 뇌가 숨 돌릴 틈을 빼앗아 불안과 초조를 일상으로 만들고, 성과 중심의 조직 문화는 작은 실패에도 과도한 죄책감을 심어준다. 

여기에 타인의 ‘완벽해 보이는’ 삶과의 비교가 더해지면 스스로를 부적격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잦아지고, 결국 마음의 병이 찾아온다.


 이기은의 회화는 바로 이러한 현대 사회의 감정 소진을 응시하며 시작된다. 

10년이 넘는 직장 생활 속에서 억눌린 우울과 불안을 경험한 작가는, 다시 손에 붓과 물감을 쥐었다. 

캔버스 위에 유채 물감을 과감히 쏟아 붓고, 물감이 흘러내리고 번지며 마르는 과정을 지켜보는 순간은 작가에게 일종의 명상이자, 

억눌린 감정이 겹겹이 쌓인 내면의 물결을 드러내는 통로가 되었다.


 작가는 “감정은 내면 깊은 곳에서 보내온 본능의 메시지”라 말한다. 

씨앗에서 발아해 꽃을 피우듯, 감정 또한 환경과 받아들이는 방식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난다. 

꽃의 색과 형태에서 시각적 모티브를 얻어 캔버스에 피워낸 작업은, 억압된 감정의 발단과 성장, 결실을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 

때로는 꽃 없이 액체만으로 작업하기도 하는데, 이는 감정의 유동성과 강도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속이 끓는다’, ‘사랑이 흘러넘친다’ 같은 언어적 비유들이 시사하듯, 물감의 흐름과 번짐은 찰나의 감정이 흘러간 자리에 남긴 잔상을 시각화한다.


 전시 작품명은 모두 '5월의 감정기록' 처럼 표기되어 있다. 

이는 단순한 시간 표시가 아니다. 매달 변화하는 감정의 결을 ‘솔직하게’ 기록한 감정 일기이며, 잊혀진 감정들을 다시 찾기 위한 이정표다. 

관객은 캔버스 앞에 서서 물감의 흐름과 꽃의 형상이 전하는 온도를 온몸으로 느끼고, 자신만의 감정 지도를 그려 볼 수 있다.


 우리가 감정을 돌봐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억눌린 감정은 결국 스트레스와 불안으로 되돌아와 삶의 중심을 흔들고, 자기 이해와 회복력을 약화시킨다. 

반면 감정을 인정하고 표현할 때 우리는 스스로의 욕구와 가치를 명확히 인식하며, 마모된 일상 속에서도 균형을 찾을 수 있다. 

또한 솔직한 감정 표현은 타인과의 진정한 공감과 연대로 확장되어, 개인을 넘어 사회적 치유의 장을 만들어 준다.


 이 전시는 바쁜 일상 속에서 스스로를 잃어버린 모든 이들에게 작은 치유의 초대장이다. 

캔버스 위 꽃잎 하나하나와 번지는 물감의 자취는, 우리가 흘려보낸 감정의 파편을 다시 모으는 기록이자 제안이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감정을 온전히 마주해 보시길 바란다. 

그 순간이야말로 진정한 치유의 시작이 될 것이다.

 

Wor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