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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note

정미옥은 판화를 해오다가 최근 붓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판화라는 매체를 주로 이용해 왔던 작가의 반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가 새삼 ‘그림’에 욕심을 부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흔히 판화를 테크닉에 국한시켜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복제라는 단순개념 때문이다. 그러나 정미옥의 작업을 대표했던 ‘입체판화’는 계속 찍어낼 수 있는 판화의 반복성을 이용한 조형물로서 작품구상에서부터 완성까지 그 과정 전부가 매우 독특한 은유의 세계를 머금고 있었다. 이를테면 그는 스크린프린트(screenprint) 기법을 수단으로 하되 하나의 판에 여러 번 찍는 대신, 명도의 차이를 주어 몇 개의 판에 다르게 찍어 낸 다음 중첩시키고 하나의 액자에 싸 넣어 종지부를 찍는 셈이었다. 그것은 여러 개의 이야기, 하나이면서도 같지 않은 이야기였다. 마치 높낮이가 다른 음(音)을 어느 순간 한꺼번에 울려 화성(和聲)을 만드는 것과 같은 효과인 셈이다. 매번 투명도를 달리한 아크릴을 재료로 그가 사용한 중첩 (accumulation)이라는 어휘는 ‘판화만’이 허락할 수 있는 기법으로 판화를 뛰어넘어 판화의 가능성을 기법 이상의 존재로 단연 돋보이게 만들었다.

 

 그의 ‘그리기’는 사실 이 프로세스를 그대로 옮겨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신성의 산물로서의 작품은 어떤 식으로든 작가의 정서와 체험을 드러내게 되어있다. 오일이나 아크릴물감을 가지고 그가 화면을 분할하고 색을 올리는 과정은 판화에서의 중첩이라는 어휘를 캔버스 화면에 ‘최적화’하는 새로운 작업이다. 이는 ‘그리기’ (페인팅)의 가능성이나 그 의미를 작가 고유의 것으로 수복하고 확장하기 위함이다. 작가의 일생에 확장을 향한 새로운 의도나 시도가 없다면 작가는 자기 작품의 복제자로 남는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정미옥의 ‘색칠’이다. 한 번 칠하고 두 번, 세 번 칠하면서 거듭 그는 하나의 직선에 이전의 판화가 선결할 수 없었던 색의 변주를 시도한다. 변주는 화면 전체로 퍼져 나가는 것이 마땅하다. 그가 손으로 그려 낸 것은 놀랍게도 판화만큼/판화보다 더 정교하면서도 한층 다른 ‘놀이’의 세계를 보여준다. 명도를 두고 반복되는 선과 색은 중첩의 효과다. 이들은 중첩될수록 자기 음률을 지니고 ‘합창’에 참여하는 개체들이다. 이 같은 반복 속의 차이는 정미옥이 자기 회화를 창출하는 중첩 프로세스의 요건을 차지한다. 이것은 동시에 그가 직선을 통하여 애착관계를 만들어왔던 신구성파들의 감정배제적 태도나 계획적 작도방식(premeditation)에 대한 반란이기도 하다!

 

 정미옥의 ‘색 올리기’는 그동안 판화로 고수해 온 테크닉의 엄격함에 자신의 삶과 숨결 – 그 미묘한 농담 (濃淡))의 켜, 변이를 이식하는 작업이다. 과연 화면은 물결이 이는 듯, 시린 듯, 처연한 듯, 눈이 부실 듯하고, 위에서 아래로 이편에서 저편으로 또는 공중에서 사선을 내려 가로지르는 색과 깊이의 변차(variation)로 말미암아 때로는 관능적이기도 하다. 그는 유희를 선택한 것이다. 회화의 즉물성(卽物性)이 주는 설레임이 여기 있다. 바라보면서도 즐거운 일이다.

Work

Artist